1945년 8월 15일, 대한민국은 36년간 이어진 일제의 어둠을 지나 빛을 되찾았다. 조국의 독립이라는 하나의 꿈을 품고 힘겨운 시간을 견뎌낸 수많은 이들의 용기와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울산에도 나라를 지키기 위해 헌신한 독립운동가들의 발자취를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이번 광복절에는 울산에 남겨진 독립의 흔적을 찾아 그날의 역사를 돌아보고,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광복의 의미를 마음 깊이 되새겨보자.
일제의 폭정에 맞서 총칼을 들고 무장 투쟁을 이끌었던 대한광복회 총사령 고헌 박상진 의사. 판사 시험에 합격하고도 일제의 사법관이 되기를 거부한 채 독립운동에 투신한 그는, 전국적인 조직망을 세워 군자금을 조달하고 친일파를 처단하는 데 앞장섰다.
고즈넉한 한옥 생가와 전시 공간에는 조국을 위해 모든 것을 던졌던 청년 지사의 결의가 짙게 깃들어 있다. 그의 일대기와 대한광복회의 투쟁 기록을 따라 걷다 보면, 엄혹했던 시절을 뚫고 타올랐던 뜨거운 독립의 열기가 가슴 깊이 전해진다.
일제의 탄압에 맞서 학문과 민족정신을 가르쳤던 울산 지역 유일의 민족사립학교, 보성학교. 설립자 성세빈 선생과 지역 주민들이 뜻을 모아 세운 이 학교는 일제의 삼엄한 감시와 폐교 명령 속에서도 해방 직전까지 500여 명의 졸업생을 배출하며 민족의 의식을 일깨웠던 항일운동의 구심점이었다.
옛 보성학교 터 근처에 조성된 보성학교 전시관에서는 당시 항일 교육의 흔적과 성세빈 선생의 유품, 주민들이 세운 공덕비 등을 만날 수 있다. 배움을 통해 민족의 뿌리를 지켜내고자 했던 스승과 학생들의 뜨거운 집념을 마주할 수 있는 뜻깊은 공간이다.
일제의 강압적인 황국신민화 정책 속에서도 우리말과 글을 목숨처럼 지켜낸 인물이 있다.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모진 옥고를 치르면서도 한글 연구와 보급에 평생을 바친 외솔 최현배 선생이다.
외솔기념관에는 선생이 남긴 친필 원고와 한글 보급 운동의 유물들이 전시돼 있다. 일제의 탄압에 굴하지 않고 글을 지킴으로써 민족의 정체성을 이어가려 했던 그의 집념을 마주하면, 우리가 오늘날 무심코 쓰는 우리말 하나하나가 얼마나 소중한 유산인지 새삼 느껴진다.
왼쪽부터 병영, 언양, 남창 3.1만세운동 재현 행사(사진제공: 울산사진DB)
1919년 전국을 뒤흔든 3·1운동의 열기는 울산 곳곳에서도 거세게 타올랐다. 중구 병영에서는 일제의 무자비한 총칼에 굴하지 않고 주민과 청년들이 목숨을 걸고 만세를 외쳤고, 울주군 지역 역시 장날을 기해 언양(4·2 만세운동)과 남창(4·8 만세운동) 장터에서 수많은 농민과 상인들이 태극기를 들어 올리며 일제의 수탈에 당당히 맞섰다.
울산 도심과 장터를 붉게 물들였던 만세운동의 흔적은 곳곳에 여전히 남아 있다. 삼일사(三一祠)와 병영3·1운동기념조형물, 그리고 언양 3·1운동사적비와 남창 3·1의거 기념비는 당시 민초들이 흘린 피와 땀의 증언이다. 그 역사의 현장에 서서 81년 전 거리를 가득 채웠을 민중의 함성을 상상해보면, 가슴 한구석에서 아련함과 숭고함이 함께 밀려온다.
울산항일독립운동기념탑은 지역에서 펼쳐진 항일 독립운동의 의미를 기억하기 위해 조성된 공간이다. 이름 없이 독립을 위해 힘을 보탰던 숭고한 희생을 한자리에서 기억하고 기릴 수 있다.
기념탑에는 일제강점기 울산에서 펼쳐진 다양한 항일 투쟁과 독립운동가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탑 주변을 둘러보며 그 이름을 나지막이 읽어보는 것만으로도,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평화의 무게를 다시금 느끼게 된다.
출처: 행정안전부 공식 유튜브
역사의 현장을 걸으며 그날의 기억을 마주하다 보면, 우리가 누리는 일상의 소중함을 다시금 깨닫게 된다. 제81주년을 맞는 이번 광복절, 순국선열과 애국지사들의 숭고한 희생을 기억하며, 잠시라도 시간을 내어 감사와 추모의 마음을 전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