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7월, 프랑스 파리에서 날아온 낭보. ‘반구천의 암각화’가 마침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는 소식이다. 유네스코 등재는 단순히 지역의 경사를 넘어, 한반도 선사인들의 창의성과 예술적 깊이가 인류가 함께 지켜야 할 ‘탁월한 보편적 가치*’로 인정받았다는 점에서 더욱 뜻깊다. 대한민국의 17번째 세계유산이자, 인류 최초의 고래잡이 기록을 간직한 경이로운 현장. 올겨울, 이 위대한 유산을 따라 걸으며 그 깊은 이야기를 직접 마주해보면 어떨까.
*탁월한 보편적 가치(OUV, Outstanding Universal Value): 국경을 초월해 전 인류에게 공통적으로 중요한 문화·자연적 중요성을 지닌 유산의 가치
‘반구천의 암각화(Petroglyphs along the Bangucheon Stream)’는 대곡천(반구천)물길을 따라 형성된 선사시대 암각화 유적, ‘울주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와 ‘울주 천전리 명문과 암각화’를 하나로 묶은 통합 유산이다.
돌을 파서 바위에 새긴 글과 그림. 그 존재만으로도 놀라운데, 그 흔적이 수백 점에 이른다니 그저 경이로울 따름이다. 저만의 방식으로, 저만의 의미대로 남긴 기록들. 수천 년이 지난 지금, 한반도 선사 문화의 정수라 인정받는 걸작으로 우뚝 서게 되었다.
제47차 세계유산위원회 평가 中
출처: 국가유산청 Korea Heritage Service 공식 유튜브
지난해 7월 14일, 반구천의 암각화가 대한민국의 17번째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며 전 세계가 함께 보호해야 할 소중한 인류의 자산이 되었다.
세계유산위원회는 반구천의 암각화가 ‘신석기부터 철기시대에 이르기까지 약 6,000년 동안 지속된 암각 제작 전통을 증명하는 독보적인 증거‘라는 점과, 특히 ‘반구대 암각화에 묘사된 정교한 고래 사냥 모습이 인류의 창의적 재능을 보여주는 탁월한 사례‘라고 극찬했다.
두 유산은 반구천(대곡천)을 따라 약 2.4km 거리를 두고 떨어져 있다. 차를 타고 이동할 수도 있지만, 반구천을 따라 산책로가 잘 조성되어 있으니 울산암각화박물관을 시작점으로 걸어보기를 추천한다. 박물관 전시를 먼저 관람한 후 이동하면 암각화의 문양을 훨씬 쉽게 이해할 수 있으며, 두 곳을 모두 돌아보는 데는 왕복 약 2시간 정도 소요된다. 올해 중 무료 셔틀버스도 운행 예정이니, 공영주차장에 주차한 후 셔틀버스를 타고 이동해보는 것도 좋겠다.
박물관 입구에서 하류 쪽으로 연결된 ‘반구대암각화길’을 따라 약 30분(1.2km) 걸어가면 ㄱ자로 꺾인 절벽 ‘울주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를 만난다. 문화재 보호를 위해 강 건너 전망대에서 망원경으로 감상해야 하지만, 렌즈 너머로 보이는 생동감은 압도적이다.
그림은 주로 절벽의 중하단부 매끄러운 면에 집중적으로 분포되어 있다. 망원경을 통해 바위 면을 자세히 살피면, 가장 먼저 눈길을 사로잡는 것은 단연 ‘고래’다. 새끼를 등에 업은 귀신고래, 물을 뿜어내는 혹등고래, 그리고 작살을 맞거나 그물에 걸린 고래의 모습이 놀라울 정도로 정교하게 묘사되어 있다.
고래뿐만 아니라 호랑이, 사슴, 멧돼지 등 육지 동물의 역동적인 모습과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는 사람들, 사냥 도구인 그물과 작살 등 당시의 생활상이 파노라마처럼 이어진다. 바위의 질감과 굴곡을 따라 생동감을 극대화한 선사인들의 심미안. 그 경이로운 예술의 경지를 오래도록 찬찬히 눈에 담아보자.
망원경으로 무엇을 볼지 고민이라면? 7,000년 전 인류가 남긴 ‘생생한 일기’ 속 주인공 ‘새끼를 등에 업은 귀신고래’, ‘그물을 던지는 사람들’, ‘춤추는 무당’ 찾아보기!
이미지 출처: 반구천의 암각화 홈페이지
다시 박물관으로 돌아와 상류 쪽으로 연결된 ‘천전리암각화길’을 따라 약 30분(1.2km) 올라가면 천전리 명문과 암각화에 도착한다. 강 건너편에서 바라봐야 했던 반구대 암각화와 달리, 산책로 바로 옆에서 거대한 바위 면을 가까이 마주할 수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약 25도 정도 비스듬히 기울어진 바위면 위쪽에는 선사시대의 기하학적 문양과 동물 그림이, 아래쪽에는 신라 왕족들의 명문과 기마 행렬도가 새겨져 있다. 이는 문자 기록 이전 시대부터 역사 시대까지, 수천 년의 시간을 한자리에서 보여주는 독보적 기록이다. 특히 법흥왕 동생 사부지갈문왕의 기록 등은 신라 사회 연구의 결정적 사료가 된다.
암각화 맞은편 계곡 바닥에는 중생대 백악기에 형성된 공룡 발자국 화석이 생생하게 남아 있다. 거대한 지구 역사를 증명하는 자연사 교육의 현장에서, 억겁의 세월을 마주하는 특별한 경험을 누려보길 바란다.
암각화 주변을 걷다 공룡 알처럼 생긴 바위를 발견했다면 공룡과 만날 준비 완료! 핸드폰으로 QR 코드를 스캔해 앱을 다운로드하면 약 1억 년 전 백악기 시대의 모습이 펼쳐지는 마법~!
이미지 출처: 반구천의 암각화 홈페이지
국내 유일의 암각화 전문 박물관으로,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로 향하는 길목에 위치하고 있다. 반구대 암각화의 실물모형과 입체 영상시설, 선사시대 생활상을 보여주는 각종 모형물이 전시되어 있다.
대곡천의 역사와 문화를 집대성한 박물관으로, 천전리 명문과 암각화 인근에 위치하고 있다. 구석기 시대부터 조선 시대에 이르는 1만 3천여 점의 방대한 유물을 전시하고 있다.
겨울의 반구천은 화려하진 않지만, 비워낸 풍경만큼이나 깊은 사색의 시간을 선물한다. 바위에 새겨진 작은 선 하나하나가 수천 년 전 누군가의 치열한 삶이자 간절한 예술이었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차가운 겨울바람조차 경건하게만 느껴진다.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는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이다. 인류 공동의 자산이 된 만큼, 우리는 이 소중한 유산을 아끼고 보존하며 다음 세대에게 온전히 물려주어야 한다. 앞으로는 기분 좋은 책임감으로, 반구천의 시간을 함께 지켜나갈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