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를 살아가는 데 쓰이는 감각은 대체로 시각에 쏠려 있다. 눈으로 무언가를 보고, 빠르게 판단하고, 넘어간다. 그래서일까. 어느 순간부터 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이 익숙지 않게 느껴진다. ‘라스2023’은 그런 의미에서 낯설고도 반갑다. 청음 카페라는 이곳은, 단순히 커피를 마시는 공간이 아닌 음악을 ‘들으러’ 가는 장소다. 오롯이 소리에 집중하는 시간. 그 아늑한 선율 속으로 함께 들어가 보자.
‘라스2023(LAS2023)’은 울산 울주군 상북면, 영남알프스 산세가 뻗어선 절경 속에 자리하고 있다. 도심의 분주함에서 벗어나 한적한 시골길을 따라가는 여정. 그마저도 하나의 감각적인 체험이 된다. 목적지에 가까워질수록 주변은 점점 조용해지고, 마음도 함께 차분해진다. ‘혼자 오기 좋은 카페’라는 수식어를 증명하듯, 첫 만남에 나만의 아지트로 삼고 싶다는 생각이 물씬 든다.
내부에 들어서면 진공관 오디오와 빈티지 스피커에서 잔잔한 클래식이 흘러나온다. 벽면 가득 메운 LP와 CD에서 이곳 주인장의 내공을 엿볼 수 있다. 1층은 스피커 바로 앞에서 음악을 감상할 수 있는 청음실로, 대부분 1인 좌석으로 배치돼 있다. 매주 토요일이면 음악영화를 상영한다고 하니, 보고 싶은 영화를 감상하러 들러봐도 좋겠다.
어바웃타임
피아니스트의 전설
2층은 자유롭게 청음하는 공간이다. 책을 읽어도 좋고, 창밖을 바라보며 시간을 보내도 좋다. 어느 자리에서든 음악으로 이어지니 마음을 비우고 귀로 머물 수 있다. 만약 책을 읽고 싶다면 책장 한가득 꽂힌 책 중 골라 읽으면 되니, 굳이 책을 가져오지 않아도 된다. 참고로 음악 감상을 위해 대화를 지양하고 있으니, 조용히 머무르고 싶은 날 들러보면 좋겠다.
‘라스2023’에서 커피는 좋은 음악을 더 깊이 있게 만드는 매개다. 원두 종류도 ‘클래식’과 ‘재즈’로 명명돼있으니 커피를 고르는 순간도 감미롭다. 커피 외에 비카페인 음료, 달달한 디저트도 있으니, 음악에 곁들일 요깃거리로 함께 즐겨보면 좋겠다.
흔한 배경음악이 아닌, 선별된 음악 리스트. 재즈, 클래식, 인디음악을 비롯해 잘 알려지지 않은 앰비언트*까지 공간을 감싸며 흐른다. 듣고 싶은 노래를 신청해 함께 청음할 수 있다는 것도 이곳만의 특별함이다.
*앰비언트(ambient music): ‘주변 환경’을 뜻하는 영어 단어 ‘ambient’에서 유래한 명칭으로, 멜로디와 리듬이 도드라지지 않고 차분하고 반복적인 사운드를 통해 공간의 분위기와 감각을 채우는 음악 장르
음악의 선율을 따라가다 보면 처음엔 잘 들리지 않던 소리가 또렷해진다. 다양한 무게의 음악을 경험하다 보면 마치 한 편의 음악 다큐를 감상한 것만 같다. 집으로 돌아갈 땐 이곳에서의 시간도 음악 한 곡으로 남는다. 다시 반복하고 싶을 때, 멀지만 멀지 않은 이곳에 기꺼이 다시 찾아와 보기를.
‘라스2023’은 특별한 무언가를 보여주려 하지 않는다. 그저 조용히 들려준다. 이 공간이 주는 가장 큰 위로는 강요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이곳에선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괜찮고, 말하지 않아도 괜찮다. 그저 가만히 음악만 들어도 그 시간이 헛되지 않다는 믿음. 그 신뢰 하나로 충분한 위로가 된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야 완성되는 공간. 혼자여도 좋으니 두 손 가득 든 짐을 내려놓고 훌쩍 떠나와 보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