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고유의 문화를 잇고자 외길 인생을 걸어온 장인들. 한국의 전통을 지키는 무형문화재 전승자다. 울산 지역에는 여덟 종목의 무형문화재가 있으며, 각 분야의 장인들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가고 있다. 우리가 기억하고 함께 지켜야 할 전통, 그 숭고한 이야기를 따라가 본다.
무형문화재는 ‘여러 세대에 걸쳐 전승되어 온 무형(無形)의 문화적 유산 중 보존·전승이 필요한 종목’을 말한다. 여기에는 전통 공연·예술, 전통기술, 전통지식, 구전 전통과 표현, 전통 생활관습, 의식·의례, 전통놀이·축제 및 무예 등 여러 분야의 다양한 종목이 해당한다.
무형문화재는 지정 주체에 따라 국가가 지정하는 무형문화재와 시·도가 지정하는 무형문화재로 나뉜다. 우리나라는 1964년 종묘제례악(宗廟祭禮樂) 을 국가무형문화재 제1호로 지정한 이후 현재까지 국가무형문화재 160개 종목(2024.10.31.기준)과 시도무형문화재 632개 종목(2024.10.31.기준)을 지정하여 관리하고 있다.
1) 조선시대 역대 왕과 왕비의 신위를 모신 사당(종묘)에서 제사(종묘제례)를 지낼 때 무용노래악기를 사용하여 연주하는 음악
울산에는 현재 여덟 종목의 무형문화재가 지정되어 있다. 울산시무형문화재 제1호는 장도장(長刀匠)으로, 울산이 광역시로 승격됨과 동시에 경상남도 무형문화재로 활동하던 故 임원중 장인이 1대 보유자로 인정되었다. 이후 일산동 당제(별신굿)와 모필장, 울산 옹기장, 벼루장, 울산쇠부리소리, 그리고 마두희와 판각장이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울산은 다양한 분야의 무형문화재를 꾸준히 발굴하여 우리 전통을 잇는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다.
울산시무형문화재 여덟 종목 중 다섯 종목은 장인의 손을 통하여 면면히 이어져 오고 있는 전통기술이다. 모필장, 장도장, 벼루장, 옹기장, 그리고 판각장. 오래도록 전승되어온 전통기술을 바탕으로 고유한 가치를 창조해내고 있는 장인들, 지금 바로 만나보자.
장도는 몸에 지니는 칼집이 있는 작은 칼로, 주로 호신용이나 장신구로 쓰였다. 장도를 만드는 공정은 수십 가지 과정에 이를 정도로 복잡하고 섬세한데, 이러한 장도를 만드는 기능과 만드는 사람을 ‘장도장’이라 한다. 특히 장인의 섬세한 세공술과 강한 담금질로 탄생한 울산의 은장도는, 전국적으로 아름답기로 정평이 나 있다.
울산의 1대 장도장 보유자인 故 임원중 장인(1930~2004)은 은장도를 만드는 데 뛰어난 실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는 작고 전까지 기존 재료인 금속뿐만 아니라 뼈, 옥, 상아 등 다양한 재료로 장도를 제작하였으며, 섬세한 조각이 돋보이는 작품들로 활발한 전승 활동을 펼쳤다.
이후 2019년, 故 장추남 장인(1930~2023)이 2대 보유자로 지정되어 그 맥을 이었다. 70여 년간 은장도 외길 인생을 걸어온 그의 작품은 특히 오동상감기법이 높이 평가받는다. 은장도 전면에 오동상감 문양을 넣어 완성도 높은 예술성을 보여주고, 완전히 전통방식 그대로를 고수한 것이 특징이다.
2) 구리와 금을 합금한 재료를 인뇨를 이용해 변색시킨 오동판에 문양을 세밀하게 조각해 은을 상감하는 기법
모필은 짐승의 털을 모아서 만든, 먹이나 채색을 찍어 글씨를 쓰거나 그림을 그리는 붓이다. 붓은 조선 시대까지 문방사우(文房四友)의 하나로 매우 중요한 필기구였으며, 이러한 붓을 만드는 사람과 그 기술을 ‘모필장’이라고 한다.
3) 문인들이 서재에서 쓰는 붓, 먹, 종이, 벼루의 네 가지 도구
울산의 모필장 보유자인 김종춘 장인(1942~)은 17세에 모필 제작에 뛰어든 이후 지금껏 전통의 맥을 이어오고 있다. 그는 전통기법의 양모필과 황모필을 비롯하여 말 꼬리털로 제작한 산마필과 노루 겨드랑이털로 만든 장액필 등으로 다양한 작품세계를 보여주며 전국적으로도 탁월한 기능을 인정받고 있다.
옹기는 황갈색의 유약을 발라 구운 도기 항아리를 일컫는다. 주로 배가 불룩한 모양으로 제작되어 고추장과 된장 같은 장류를 저장해 장독으로도 불렀다. 옹기는 흙과 유약, 나무 세 가지의 단순한 재료로 만들어지지만, 제작과정은 옹기의 크기만큼이나 매우 고된 노동이다.
특히나 울산의 옹기가 유명해진 데는 이유가 있다. 울주군에 있는 외고산 옹기마을 때문이다. 전국적으로 가장 많은 옹기장이 모인 역사가 숨 쉬는 마을. 이곳에 모인 옹기장들은 울주외고산옹기협회를 조직하여 무형문화재 보유자로 활동하고 있다. 이들은 전통기법의 옹기를 제작함을 물론이고 독창적인 기술로 전통옹기의 대중화와 홍보에 큰 역할을 해내고 있다.
벼루는 평편한 바닥에 물을 부어 먹을 갈아 붓으로 찍어 쓸 수 있도록 만든 필기구다. 이 또한 문방사우 중 하나이며, 우리나라의 벼루는 해동연(海東硯)이라 불리며 뛰어난 품질로 인정받아왔다. 벼루 제작은 원석을 다듬는 과정에서 많은 힘이 필요하며, 다양한 형태와 문양을 조각하는 과정에서 섬세하고도 예술적인 감각이 요구되는 공예품이다.
울산의 벼루장 보유자인 유길훈 장인(1949~)은 최고의 벼루를 만들겠다는 마음으로 전국의 다양한 벼룻돌을 찾아다니다가, 반구대암각화가 있는 대곡천에서 ‘언양록석’이라는 벼룻돌을 발견한 후 울산에 터를 잡았다. 그의 벼루는 대곡천의 암석으로 제작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으며, 벼루의 뒷면까지 조각된 용, 사군자, 십장생, 산수 등의 문양이 작품에 생동감을 더한다.
나무판에 글자나 그림을 새기는 것을 판각이라 한다. 우리나라 판각 역사는 통일신라시대(751년)에 「무구정광대다라니경無垢淨光大陀羅尼經)」 목판이 간행된 것으로 볼 때 그 이전일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만들어진 고려시대 해인사 팔만대장경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되었으며, 우리나라 판각 기술은 세계적으로 그 우수성을 인정받고 있다.
사진제공 : 울산광역시 중구울산의 판각장 보유자인 한초 장인(1953~)은 국가무형문화재 각자장 이수자로, 수원 화성행궁 현판, 경복궁 내 건청궁 현판 복원 제작 등 다양한 현판 및 주련 복원작업에 참여했다. 지난 2015년 울산에 정착한 후 한석봉이 초서로 쓴 천자문의 ‘울산개간본’ 판각을 완성하는 등 판각에 전념해 왔다. 일월오악도, 오륜행실도, 반구대암각화 등 글과 그림을 오가며 경계 없는 작품의 세계를 보여주고 있으며, 마치 사진을 그대로 오려 붙인 듯한 건탁⁴⁾ 방식의 작품들이 섬세하다.
4) 목판 위에 종이를 얹어 두드리면서 찍는 방식
남은 세 종목의 무형문화재는 개인이 아닌 집단으로 내려오는 고유문화로, 일산동 당제(별신굿)와 울산쇠부리소리, 그리고 울산 마두희가 지정되어 있다. 몸짓 혹은 소리를 통하여 고스란히 내려온 우리 조상의 생활문화, 지금 바로 알아보자.
울산 어촌마을 대부분은 옛날부터 별신굿을 지냈다. 별신굿은 풍어와 안녕을 비는 주술적, 종교적 기능과 함께 축제적 기능을 함께 띠고 있는 오랜 고유문화. 그중에서도 동구 일산동 당제는 2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유서 깊은 대규모 의식으로, 그 지속성과 중요성을 인정받아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마을주민들은 일산동당제보존회를 조직하여 지금까지도 마을의 제당을 유지하고 관리하며 정기적으로 성대한 별신굿을 행하고 있다. 일산동 당제의 별신굿은 국가무형문화재 제82-1호로 지정된 동해안별신굿의 보유자인 김영희 무녀 집단의 주도하에 이루어진다. 이 과정에서 마을주민들은 갈등을 해소하며 화합할 수 있어 더욱 뜻깊은 자리로 맥을 이어가고 있다.
‘쇠부리소리’는 철을 채취하고 가공하는 고된 쇠부리 과정에서 노동의 힘을 돋우기 위해 내었던 소리인 노동요이다. 고대부터 철의 생산지로 이름이 높았던 북구에서 발달한 쇠부리소리는 정확한 가사나 악보 없이 쇠부리 불매꾼⁵⁾에 의해 구전되고 있었기에 철 생산의 중단과 함께 소멸할 위기에 처하기도 하였다.
5) 불을 지피는 사람, 대장장이
하지만, 1981년 울산MBC가 마지막 불매대장인 故 최재만 옹의 구술을 채록하면서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지금의 쇠부리소리는 울산 서부와 동부 지역의 소리를 수집하여 정리한 것으로, 여기에는 철 생산 과정 외에도 풍부한 철 생산을 염원하는 의례가 고스란히 녹아들어 있다.
‘마두희(馬頭戱)’는 울산에서 전승되어 온 대동놀이⁶⁾로, 여러 사람이 편을 나누어 굵은 밧줄을 마주 잡고 승부를 겨루는 줄다리기 놀이다. 다른 대동놀이와는 달리 「학성지(1749)」 , 「울산부읍지(1832)」 등 여러 읍지에서 마두희에 대한 기록을 찾을 수 있다.
6) 전통적으로 전해오는 마을이나 고을 단위의 단체 놀이
정월대보름에 지역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며 행하던 줄다리기. 조선시대부터 300년 넘게 이어진 마두희는 일제강점기에 명맥이 끊겼다가 1988년 처용문화제의 중심행사로 부활, 2012년부터 ‘태화강마두희축제’를 개최해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
소중한 문화유산을 잇겠다는 일념 하나로 걸어온 숭고한 길. 금보다 더 값진 나날들을 쌓아온 장인들의 삶에 무한한 존경을 표한다. 앞으로도 우리의 유산을 지키는 모든 이들을 기억하고, 그 우직한 걸음이 지치지 않도록 아낌없는 응원을 보낼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