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곳곳에는 성곽길이 있다. 빠르게 변하는 세상 속 느리게 흘러가는 성곽 안팎의 옛길. 올겨울 호젓하게 걸을 만한 산책길을 찾는다면, 가까운 성곽길에서 과거의 시간을 따라 천천히 걸어보자.
병영성은 왜적을 막아내기 위해 조선 태종(1417) 때 축조된 성으로, 경상좌도 육군을 지휘하던 병마절도사가 머물렀던 곳이다. 현재는 성곽을 따라 둘레길이 만들어져 도심 속 휴식처로 사랑받고 있다. 병영성으로 가는 길은 두 가지. 서동사거리에서 오르는 북문 방향과 어련당에서 올라가는 동문 방향이 있다. 서문지에서 동문지까지 왕복하는 데는 느린 걸음으로 약 1시간 30분. 언덕이 가파르지 않아 남녀노소 걷기에 좋으며, 지대가 높아 일몰과 야경을 보기에도 안성맞춤이다.
언양읍성은 삼국시대에 흙으로 쌓았다가 조선시대에 돌로 다시 쌓은 성으로, 우리나라에서는 드물게 평지에 네모 형태를 띠고 있다. 성곽 둘레만 1,500m. 현재는 영화루(남문)를 복원하고, 일부만 남은 성돌에 새 돌을 쌓아 옛 모습을 되찾고 있다. 읍성길을 잘 걷고 싶다면 언양읍성 안내소(북문)에서 정보를 얻은 후, 영화루까지 가로질러 걸어보기를 추천한다. 성벽 안의 과거를 지나면, 영화루에서 성벽 너머의 현재를 마주할 수 있다.
조선 성종 때 지어진 울산읍성은 1597년 정유재란에 소실되기까지 울산의 행정중심지 역할을 했다. 울산시립미술관 옆에 자리한 옛 울산읍성의 중심 건물 ‘동헌’. 이를 비롯해 중구 북정동, 교동, 성남동, 옥교동 일원에서 성벽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원도심 속 좁은 골목에 포개어진 울산의 이야기. 현재 울산읍성 서문지터에서 동문지터까지 약 800m 구간을 따라 ‘읍성길이야기路’가 조성되어 있으니, 조선을 거쳐 현대까지, 추억의 길을 천천히 거닐어보자.
1510년 경상좌수영이 주둔하던 시절에 축조된 개운포 경상좌수영성. 길이만 1,245m에 이르는 성은 동해안 일원의 수군 관련 성곽 중 가장 큰 규모이며, 그 가치와 희소성을 인정받아 지난 8월 시 기념물에서 국가지정문화유산으로 승격되었다. 나라의 길목을 지킨 산성. 입구 정면으로 보이는 남쪽성벽의 좌우 끄트머리에서 성곽 둘레길로 오를 수 있는데, 산길이니만큼 편한 복장으로 들르는 것이 좋다. 고요하게 흘러가는 옛 성. 성곽을 따라 걸으며 500년의 시간을 완주해보기를.
울산에는 아픈 역사를 품은 두 개의 왜성이 있다. 그중 한 곳이 울산왜성인데, 지금의 학성공원 자리에 그 흔적이 남아있다. 과거를 품고 현재를 살아가는 곳. 학성공원을 오르다 보면 치열한 전투의 현장이었던 성의 모습을 곳곳에서 찾을 수 있다. 나무 그늘이 내려앉은 성벽. 역사의 길을 차분히 걷다 보면 정상에서 태화강을, 그 너머 높이 솟은 현대의 빌딩 숲까지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울산에 남은 또 하나의 왜성은 서생포왜성. 산꼭대기에 있어 멀리서도 눈에 띄는 이곳은, 국내에 남아있는 왜성 중 가장 규모가 크고 원형이 잘 남아있다는 평을 받는다. 경사면에 쌓은 성벽. 서생포왜성은 다른 성곽길 코스 대비 가파르고 난도가 높아 운동화 착용이 필수다. 성 위에 오르면 파노라마로 펼쳐지는 진하해수욕장과 강양항의 풍경. 벚꽃 명소로도 유명하니 봄에 다시 한번 들러보기를 추천한다.
오랜 시간 사람들이 밟아온 길. 수백 년의 세월을 안은 성곽길은 때마다 다른 얼굴로 기억에 스민다. 언제고 걷기 좋은 아름다운 성곽길. 혼자여도 괜찮으니 잠깐 시간을 내어 역사 속에 머물러보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