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에는 무려 75년 동안 은장도 외길을 걸어온 장인이 있다. 소중한 문화유산을 잇겠다는 일념 하나로 달려온 세월. 사라져가는 전통예술의 명맥을 이어가는 일은, 기계화된 현대의 생산방식보다 훨씬 수고스러웠을 것이다. 그럼에도 전통의 가치를 지키고자 올곧이 한 길을 걸어온 장인. 그의 눈빛과 손길에는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숭고함이 깃들어 있다. 울산 무형문화재 제1호 장도장*, 장추남 장인의 뜨거운 하루 속으로 함께 들어가 보자.
*장도장: 장도는 몸에 지니는 칼집이 있는 작은 칼로, 주로 호신용이나 장신구로 쓰였다. 장도를 만드는 공정은 수십 가지 과정에 이를 정도로 복잡하고 섬세한데, 이러한 장도를 만드는 기능과 만드는 사람을 ‘장도장’이라 한다. 특히 울산의 은장도는 전국적으로 아름답기로 정평이 나 있다.
성남동 젊음의 거리를 조금 벗어난 골목. 어딘가에서 망치질 소리가 미세하게 들려온다. 소리의 진원지를 찾아 발걸음을 옮기니 이내 장추남 장인의 작업실에 도착할 수 있었다.
3평 남짓의 비좁은 작업 공간. 1930년생, 올해 나이 만으로 93세인 장추남 장인은 오늘도 작업실에서 은장도 제작에 전념하고 있다. 아직 추위가 채 가시지 않은 겨울, 조그만 난로 하나에 의존하며 세밀한 세공 작업에 몰두하는 장인. 그간 수백만 번도 더 울렸을 망치질 아래로 은빛 절개가 피어난다. 그 옆에 아버지를 보조하고 있는 아들 장경천 전수자. 그들의 모습에서 전통예술을 향한 꺼지지 않은 열정이 느껴진다.
장추남 장인은 75년의 인생을 장도를 위해 살아왔고 아흔을 목전에 두고 울산광역시 지방 무형문화재 제1호 장도장으로지정되었다. 작업대 위에서 그의 손으로 피워낸 이야기들을 만나본다.
장추남 장인 (사진제공: 울산박물관)
“아직 갈 길이 멀었습니다.
더 마음에 드는 좋은 작품을 만들고 싶습니다.”
Q(질문)장추남 장인님의 은장도 제작 역사를 듣고 싶습니다.
A(답변)16살 때 해방을 맞아 한국에 오기 전까지 일본 나고야에서 살았습니다. 한국에 돌아와서는 우리 할아버지 고향이 울산 병영이니까 죽어도 여기 땅에 묻혀야겠다는 마음으로 병영에 터를 잡았습니다. 처음부터 장도를 만든 것은 아니고, 주변에서 담뱃대 만드는 것부터 배우라 해서 배우게 된 것이었지요. 예전엔 병영성 안에 유기, 숟가락, 장도 등을 만드는 공방이 61곳이 있어 ‘병영공예마을’이라고도 불릴 정도였거든요. 그곳에서 자연스럽게 기술을 배울 수 있었고 그중에서 은장도에 관심이 많아 지금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거창한 이야기는 없습니다. 저한테는 그저 일상이었습니다.
Q(질문)오동상감기법을 높이 평가받는다고 들었습니다.
A(답변)장도를 제작하는 기법 중 오동상감(烏銅象嵌)기법은 울산에서만 볼 수 있는 고유 기법입니다. 높은 수준의 완성도가 필요하기에 가장 어려운 공정이라 할 수 있지요. 구리와 금을 합금한 재료를 인뇨를 이용해 변색시킨, 검은빛이 나는 오동판에 조각해 은을 상감하는 기법입니다. 공방과 전시관에 을자(乙字)모양의 칼인 을자도(乙字刀)와, 음식물의 독을 검사하는 한 쌍의 젓가락이 붙어 있는 첨자도(籤子刀) 등 여러 종류가 전시돼 있으니 살펴보시면 이해가 쉬울 듯합니다.
사진제공: 울산박물관
Q(질문)은장도 제작 과정은 어떻게 되나요.
A(답변)먼저 순은 덩어리를 풀무불에 달굽니다. 불씨를 너무 강하지도 약하지도 않게 하여 1000℃로 유지해야 합니다. 이후 도구들을 이용해서 두들기고 늘려서 은판으로 만든 다음, 이 은판에 칼자루와 칼집의 모형을 올려놓고 본을 뜨게 되고, 본을 뜬 판 위에 용이나 사군자와 같은 각인을 조각하고 은땜을 합니다. 후에 오목 틀에 넣고 모양을 잡은 다음 줄과 사포로 마무리하게 됩니다. 이런 공정은 5일의 시간이 소요되기도 하는데요. 그렇기에 가치를 알아봐 주시는 분들에게 더 감사드립니다.
Q(질문)은장도는 주로 어떤 용도로 쓰이나요.
A(답변)보통 은(銀)으로 만들어서 은장도라고 하지만 재질에 따라 다릅니다. 예전에는 보다 구하기 쉬운 목(木)장도를 많이들 사용했지요. 시대가 지나고 고급화가 되면서 은으로 세공을 많이 하게 되었습니다. 장도는 칼집이 있는 칼로 주로 몸에 지니고 다니기 편한 장점이 있습니다. 장신구 역할을 하기도 했고 실용성도 있었지요. 상징적인 의미도 있습니다. 칼을 지니고 다닌다는 것은 정신을 올곧게 이어가겠다는 의미를 지닙니다. 몸단장을 단정히 하고 정신을 가다듬으란 취지에서 선물용으로도 사용되었습니다. 은장도를 사용해 본 적이 있는 어르신들이 주 고객이긴 하지만 가끔 장도의 가치를 알고 찾아오는 젊은 친구들도 더러 있습니다.
Q(질문)전통공예의 맥을 잇는다는 것.
A(답변)많은 기술자가 있었고 장도에 대한 수요와 관심도 많았는데 이제는 다 옛이야기가 되어버렸습니다. 장식품으로도 팔릴까 말까인데 이 힘든 길을 젊은 사람들이 들어서려 하지 않지요. 전통예술을 지원하는 사업이 보다 많아져 명맥이 이어졌으면 하는 소원이 있습니다.
Q(질문)마지막으로 한 말씀 부탁드려요.
A(답변)저 또한 후계자 양성을 위해 힘쓰겠지만 아직 갈 길이 멀었습니다. 더 마음에 드는 좋은 작품을 만들고 싶습니다.
말을 마친 장추남 장인은 다시 작업에 매진했다. 그의 굽은 어깨에서 세월이 느껴진다. 고령에도 불구하고 매일매일 작업실로 발걸음을 옮기는 그의 열정이 부디 불꽃이 되어 후대에도 계속 계승되기를 바라본다.
현재 중구 문화의거리 수연이네에서 ‘명가(名家)의 품격(品格)’을 주제로 장추남 장인의 은장도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전통예술의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 병영의 마지막 장도가 피워낸 은빛 발자취를 부디 잊지 말고 눈으로 확인해보기를.